지난번 포스트에 이어서 말해보겠습니다.


 


 보리스는 공화정을 비롯한 어떤것도, 비록 가치있거나 정당하다고 해도 사람들의 인생을 희생시킬 명분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란지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련님과 같이 생각한 사람들이 우리의 과거를 지배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는 발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영원히 모르겠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삶 대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인간은 살기 위해 존재해. 무엇이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거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버리고서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 말이 정말로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면서부터 인간인 자들에게는 인간 이전의 문제는 관심 없겠죠. 인간이 아니게 태어난 자들은, 그 당연한 가치인 '인간'이 되기 위해 심지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겁니다.…"


 두사람의 대립의 쟁점이 눈에 보이시나요? 쉽게 말해서 공화국이라는 이상을위해서 인생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가 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 란지에에겐 있지만 보리스에게는 없는것은 현실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할 수 있군요.

 보리스는 본래 기득권층으로 태어나서 어린시절 평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출신배경이 보리스의 의식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순 없겠지요. 그러나 두 사람의 이런 차이는 이보다 더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둘중 누가 옳다거나 말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일 것입니다. 두사람 다 자기만의 인생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대하고 있으니까요. 

  이후로, 두 사람의 인생은 각자의 방향으로 전진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보리스는 안정된 삶을 추구하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작은 공동체로 들어가게 되고 란지에는 혁명을 추구하는 지하조직의 일원이 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투사가 됩니다.


 두사람의 대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깊어져가는 우리 사회에서, 흑백논리와 비방전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보리스와 란지에는 가치를 추구하고 신념을 세우는 일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리스가 했던 좋은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공화국이 네가 말하는 대로 그렇게 숭고한 가치라면... 적어도 아주 큰 이상으로 만들어진 곳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난 증오로 이루어진 나라에는 흥미 없어. 누군가에게는 죽어야만 할 인간도 다른 사람에겐 소중한 가족을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증오와 이상을 완벽히 구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련님의 말씀대로 궁극적인 가치는 결국 이상의 실현에 두어야 할 것이란 점에 대해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판타지소설의 팬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가 전민희씨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시리즈가 룬의 아이들 시리즈 입니다. 전민희 작가 특유의 섬세하면서 탁월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서술은 룬의 아이들 시리즈의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색다르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선 룬의 아이들 -원터러 편을 보겠습니다. 




 윈터러 시리즈는 맨 처음 위와같은 표지로 7권까지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주인공인 보리스 진네만이라는 인물이 나오고 중간에 란지에 로젠크란츠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보리스 진네만은 소설 초반에 일종의 쫓겨난 귀족과 같은 처지로 시작합니다. 자신의 조국(소설에서 트라바체스)에서 귀족 비슷한 신분으로 생활을 하다가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집안이 무너지고 자신은 쫓기는 몸이 되어 외국(아노마라드)으로 도망친 것입니다. 그에 반해 란지에란 인물은 귀족인 아버지가 평민인 어머니와 불장난으로 만든 사생아 였습니다. 그나마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하인과 도련님이라는 신분으로 만난 란지에와 보리스는 어느날 공화정이라는 주제에서 치열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언뜻 보면 빈자와 부자의 프레임에 갖힌 특별할 것 없는 대립처럼 보이지만 더 자세히 알아보면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인인 란지에가 지금 그들이 살고있는 아노마라드가 공화정이었던 적이 있다는 얘기를 꺼냅니다. 그러자 보리스는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을 하고 이것이 란지에를 발끈하게 만듭니다.

 사실 보리스가 쫓겨나온 트라바체스는 대륙에서 유일한 공화국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 평민이 지도자를 뽑고 국정에 영향을 줄수있는 공화국이 아닙니다. 구체제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이 이름만 바꾼 채 권리를 계속 잡고 있고 평민들은 이웃의 왕국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여 여러 영주, 의원, 선제후 들이 끊임없이 합종연횡하여 반대파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으려 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보리스의 가정도 이러한 정치적 대립의 과정에서 박살나고 아버지와 형을 잃게 된 것입니다. 보리스에게 공화국이란 평범한 사람들을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체제이며 자신을 길바닥으로 쫓아내고 사랑하는 형을 빼앗아간 괴물인 것입니다.

 여기서 보리스가 한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말대로라면 네가 말한 진짜 공화국이란 건 아직껏 한 번도 이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유령 같은 것이로군.… 그렇다면 뭘 근거로 그런 과정을 위해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거지? 난 차라리 안정된 왕정을 원해. 어차피 인간은 영원히 살지 않아. 그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곧 죽지. 그들을 한시라도 더 일찍 죽게 하는 모든 것을 난 증오해."


 보리스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강하게 열망하고 있습니다. 소설 전체적으로도 보리스는 줄곧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공화정을 추구하는 투쟁 같은 것들은 평화를 깨트리고 무의미하게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이상일 뿐이었습니다.


-계속-